
첼로처럼/ 문정희
하룻밤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매케한 담배 연기 같은 목소리로
허공을 긁고 싶다
기껏해야 줄 몇개로
풍만한 여자의 허리같은 몸통하나로
무수한 별을 떨어뜨리고 싶다
리본 냄새 풍기는 은빛 샌들의 드레스들을,
넥타이 맨 신사들을,
산사의 허세와 속물들을,
일제히 기립시켜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를 치게 하고 싶다
죽은 귀를 잘라버리고
맑은 샘물을 길어 올리게 하고 싶다
슬픈 사람들의 가슴을
박박 긁어
신록이 돋게 하고 싶다
하룻밤쯤
첼로처럼 살고 싶다
저 가슴 밑바닥을 건드리는 첼로의 현에는 막연한 슬픔과
절망과 탄식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오래 전 나는 첼로의 연주를 들을 때 마다 한없는 감상으로 빠져들곤 했다
눈물을 흘리고 한숨을 쉬고 슬픈 기분에 잠겨..
나는 그 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진실이라고 느꼈었다

꽤 혹독한 질책과 자기 반성의 긴 시간을 보내곤 나서야 나는
내 안에 있는 가볍고 과장되고 스스로 만들어 낸 유치한
감상을 거두어 낼 수 있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첼로는 내게서 멀어져갔다
첼로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옛날의 나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조금은 씁쓸한 마음으로
첼로의 선율을 내게서 밀어내곤 했던 것이다
감상에 빠지는 것이 왜 나쁘랴, 가벼운 것이 왜 꼭 나쁘랴,
삶에는 가벼운 것도 있는 법이고 질퍽이는 감상에 빠질 때도 있고
깊은 내면의 울림에 침잠할 때도 있는 법인거지,
다만 지금은 그 둘을 다 이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
옛날의 나와 다른 점일 게다.

시간이 흐르고 지금은 첼로를 들어도 마음의 가벼운 부분이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쓸데 없는 감상에 빠지지도 않고 낭만적인 슬픈 기분에 젖지도 않는다
지금은 조금 거리를 두고 듣는다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울림에 귀를 기울인다
그 때 들리는 첼로의 소리는 비통하고 슬픔에 가득찬 인간의
탄식으로 들리기도 하고 누구의 가슴에나 하나씩 안고 있을 삶의 무게로 들리기도 하고
폭풍우가 몰려오는 하늘을 바라보듯 인생이 함축하고 있는
시련과 고통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쉽게 첼로를 듣지 못하였다.

쟈클린 뒤 프레의 첼로 연주를 들으며 잠시 지나간 시절을 떠올려본다
가슴 밑바닥을 긁어내는 그녀의 첼로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28이라는 나이에 다중 경화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사망한 뒤 프레는 읽기도 말하기도 힘들게 말년에 자신이 연주한 엘가의 협주곡을 틀어놓고
멍하게 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들을 때 마다 몸이 찢겨 나가는 기분이 들어요 눈물 조각처럼.."
그리곤 고개를 떨구면서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삶을 견딜 수 있죠?"
눈물 한 줄기가 가슴을 타고 내려간다
문득 한 친구가 떠오른다
그는 어떻게 삶을 견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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