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세계

[스크랩] 한국근대회화 10인전 (박수근-작품세계)

음악의향기 2008. 12. 11. 04:12

서민 화가 박수근 "빨래터 여인" 외

 

    ♣ 화가 박수근 ♣ 지난 2007년 우리나라 최 고가 그림 경매 10건중에 4점을 차지한 박수근 화백에 관하여 간단히 소개 하겠습니다 朴壽根.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1965년 서울에서 사망.향년.51세 1952년 6.25 사변때 월남 하여 가난하게 살았고 외국 유학이나 틀별한 교육을 받은바 없는 토종화가.이며 화가 등단은 20세전후에 했다 화가 생활은 고닲으고 힘들었어며.국내 형편도 어려워 그림 사주는 사람도 없었다. 피난 생활은 매우 궁핍했다.다행히 미국대사관 어느부인이 그림을 알아보고 쌀 몇가마 값으로 그림을 싸 주고 미국에 있는 친구분에게 소개하여 흘 값으로 많이 팔아 주었다. 그래서 그림이 주로 미국에 많이 있고.최근 아주 고가로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45억2천만원에 팔인 "빨래터 여인"도 미국인 소유로.1955년 생활에 도움을 준 미국인에게 감사의표시로 그냥 준 그림이며.같은 그림이4점이 있다한다 그래서 가짜논란에 휩싸여 있었다. 화가들은 끌리는 소재가 있어면 마음에 들때 까지 그리고.또 그린다고 한다. 반 고흐 "의사 가셰의 초상"가2점이 있고. 르누아르 '갈레트의 무도회'도 2점이있어며.모네의 '루앙 대성당' '수련'등은 10여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빨래터도 진품판결을 받았다. 돌아 가신지 40년이 경과한 지금 유명화가 반열에 오르고.그 그림이 최종가로 판매되지마는 화가 박수근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저 생존 했을때 쌀 한가마가 소중하지.지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박수근은 평생 시장거리 서민들의고달픈 일상 생활상을 그리고 고단한 생애와 불우한 말년을 살면서도 "예술은 인간의 착함과 진실함을" 담아야 한다 라고 생각하고 빨래터도 화사한 봄기운이 돋아나는 그림이다. 지난5.22일 빨래터여인 이 고가로 낙찰된 이후 자주 신문에 나고 또 방송에도 膾炙되고 하여 몇자 적어 보았습니다 4십5억2천만원.큰 돈이지요.누가구입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08년1.12일 기장교리 씀.
      서민의 화가 박수근의 작품 세계 /  수채화  모음

      박수근(1914-1965)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
      다.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다.




       




       

       





       




       

       





       




       

       





       




       

       





       




       

       





       




       

       





       




       

       





       




       

       

       

      삶의 어느 한 단면...

      진실성과 그에 상응한 아름다움을 본다는 것은 참 미쁘다.

      잔잔하고도 아름다운 평화가 ..

      해맑은 빛이 서리는 창가에 서있는 영혼을 본다.

      참으로 잘살아야 할 생의 모습들이다.

      tothemoon20091124mon

       


       "선물로 받은 박수근의 그림이 우리 가족을 살려"
      진위공방 ''빨래터'' 갖고 있었던 존 릭스 美 현지 인터뷰
      "54~56년 한국 근무때 교분 물감·캔버스 구해준 답례로 받아
      형편 기울어 경매에 내놨지만 위작시비 가슴 아파 직접 나서"


      새해 벽두부터 진위 공방에 휩싸였다가 감정위원회로부터 진품 판정을 받은 박수근(1914~1965)의 유화 ''빨래터''는 원래 미국에 있었다. 원소장자였던 미국인 존 릭스(John Ricks·81)씨가 경매 관례를 깨고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29일 그는 미국 켄터키주 모처에 있는 자신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박수근의 장남 성남(61)씨, 서울옥션 관계자, 본지 기자를 함께 만났다. 하지만 "기자들이 나를 찾아내서 우리 집으로 오는 게 겁난다"며 인터뷰 지역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표지가 너덜너덜해진 낡은 여권 두 개를 꺼내 천천히 한 장씩 넘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1954년 1월부터 56년 12월까지 한국에 머물 때 쓰던 여권이에요. 평생 한국, 일본, 중국, 필리핀, 브라질, 유럽,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살았는데, 나이가 들면 기억이 희미해져요. 그래서 여권을 들여다보면서 옛날 생각을 해요."

      릭스씨는 당시 ''헤닝슨 컴퍼니''라는 무역회사의 한국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박수근을 알게 됐다. 박수근이 1960년대에 미국인 컬렉터였던 마가렛 밀러 여사에게 쓴 편지 중에도 "존 릭스씨는 홍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 언급돼 있다. 50년대와 60년대에 박수근 그림을 샀던 사람은 대부분 미군이거나 전후 복구사업으로 한국에 머물던 외국인들이다.



      "우리 회사가 서울 반도호텔에 있었는데, 우리 사무실에서 일하던 조군실이라는 한국 군인이 어느 날 박수근을 데려와 소개해 줬어요. 저는 당시 일본과 한국 지사를 담당하고 있었고, 아내와 세 아이들은 일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일본에 갔지요. 박수근은 제가 일본에 갈 때면 물감과 캔버스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곤 했어요."

      박수근은 답례로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곤 했다. ''빨래터''도 그 중 하나였다. "그가 사무실로 직접 들고 왔지요. 한국 근무 이후 홍콩, 싱가포르, 호주, 유럽 등 세계 곳곳에 근무하면서 늘 내 사무실에 박수근의 그림들을 걸어 두었어요. 보는 사람들마다 좋아했어요."

      50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지만 박수근의 그림이 비쌀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2004년 릭스씨의 아내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사위가 죽은 것을 계기로 모든 게 달라졌다.

      "그해는 우리 가족에게 매우 힘들었어요. 이듬해에 딸아이가 집안 살림 일부를 정리하기 위해 한 경매회사에 갔는데, 그곳의 도록(圖錄)에서 박수근의 작품이 84만2000달러에 팔린 것을 본 거예요. 딸아이가 제게 물었지요. ''아빠, 우리 집에 이런 비슷한 그림들 있지 않아요?'' 도록을 보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우리 집보다 비싼 그림들이 우리 집 지하실에 있다니, 어떻게 해야 하나, 보험을 들어야 하나, 은행에 갖다 맡겨야 하나, 그러다가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릭스씨는 변호사에게 ''빨래터''를 포함해 5점의 작품을 판매해 달라고 맡겼다. 그 중 ''빨래터''는 서울옥션에 출품됐고 낙찰가 45억2000만원으로 국내 경매 최고 기록을 세웠다. 릭스씨는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내와 딸이 너무 어려워서 그의 그림들을 모두 팔았어요. 예전에 내가 박수근을 도왔는데, 지금 박수근이 나를 도왔습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지금 미국과 유럽에서 그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얼마나 값진 것을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꽤 되리라 확신해요. 당시 반도호텔 안에 외국 회사가 많았기 때문에 박수근 그림을 산 외국인이 많았어요. 박수근은 말이 없는 젠틀맨이었어요. 늘 허름한 옷차림에 안경을 쓰고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지요."

      존 릭스씨는 ''빨래터'' 위작 공방을 계기로 신분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위작 시비가 있었다는 것을 변호사를 통해 들었고, 제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터넷으로 한국의 뉴스를 보고 슬펐어요. 제가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서요."

      ''빨래터''가 위작이라고 주장한 측에서는 액자가 흰색인 것에도 의혹을 제기했다. 릭스씨는 이에 대해 "우리 딸이 1970년대에 ''흰 벽에는 흰 액자가 어울린다''며 원래 액자에 흰 칠을 덧칠했다. 나는 깜짝 놀랐는데, 그림에는 손을 안 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내가 예전에 며느리한테 박수근 그림을 줬는데 며느리가 싫다고 안 가져갔다. 지금 엄청 후회하고 있다"며 소리 내서 웃었다.

      그는 반세기 뒤 한국 최고의 화가가 될 박수근을 어떻게 일찍 알아볼 수 있었을까? "전 그냥 박수근 그림이 소박하면서도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어서 좋았어요. 전 미술에 소질은 없지만 감동 받을 줄은 압니다. 그런데 많은 나라를 가봤지만, 미술관에 걸린 대가들의 그림을 보고 박수근 그림에서만큼 감동을 받지 못했어요. 전 박수근 그림의 독특한 표면이 특히 좋아요."

      그는 "한국인들이 박수근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내가 안다. 전쟁 이후 한국의 모습을 떠올리기 때문일 것이다"라고 했다. 눈에서 눈물이라도 떨어질 듯한 표정이었다. "그때 사람들은 지붕이 없는 집에 살고, 굶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이미 전쟁을 극복하고 일어서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지요. 박수근의 그림은 그런 모든 것을 담고 있어요."

       

       
      1. Principio,Allegretto
      Luigi Alberto Bianchi, Violin
      Maurizio Preda, Guitar

      • 박수근(1914~1965) 화백의 1950년대 후반 유화 ‘빨래터’(37×72㎝)가 22일 열린 제106회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서울옥션)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불과 두 달 전 자신의 기록 25억원을 훌쩍 넘기며 한국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근년 들어 박수근 작품들은 한국 미술시장의 활성화를 선도하면서 최고가 릴레이를 벌여왔다.

        ‘빨래터’는 강가에서 나란히 빨래하는 여인 6명을 캔버스에 담은 작품이다. 이날 33억원에 경매가 시작돼 2000만~5000만원씩 높여 호가되다가 가볍게 45억원을 넘기며 전화 응찰자에게 낙찰됐다. 이 작품을 내놓은 사람은 80대의 미국인으로 1950~1960년대에 군수품 사업을 하며 한국을 드나들다 박수근을 알게 됐던 그의 후원자였다고 서울옥션측은 밝혔다. 산 사람은 국내 개인 컬렉터로 알려졌다.

      • ▲22일 경매에서 45억2000만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유화‘빨래터’

      • 종전 경매의 최고기록도 지난 3월 K옥션에서 25억원에 낙찰된 박수근의 ‘시장의 사람들’(24.9×62.4㎝)이다. 박수근 경매가는 2001년 4억6000만원에 낙찰돼 관심을 끈 이후 5억원(2002), 9억원(2005), 10억4000만원(2006), 25억원(2007)으로 기록을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박수근의 그림이 1950~1960년대의 전형적인 우리 생활을 담아 현재 고가 미술품 구매자 세대의 정서에 잘 맞고, 동시대 다른 화가들이 서양미술사조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독특한 마티에르(두꺼운 질감) 화풍을 추구한 것을 인기 비결로 설명한다. 시장에서 수급이 꾸준히 이뤄져 가격형성이 가능한 점도 박수근 불패의 비결이다. 김순응 K옥션 대표는 “박수근은 가짜를 만들기도 어렵고 가짜는 표가 쉽게 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안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부산공간화랑 신옥진 사장은 “그의 작품은 국제시장에서 거래가 되지 않지만 우리 정서에 너무나 잘 맞아 국내시장만으로도 충분한 화가다”라고 말했다
    출처 : 우리와음악
    글쓴이 : canad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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