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세계

용기와 힘을 주는 음성들 ...

음악의향기 2008. 12. 14. 03:47

 

         

     마음가짐을 새롭게 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다.   

                          

                                 -윌리암 제임스-

용기와 힘을 주는 음성들 / 엄원태 
 

  



  젊은 날, 습작시절에는 책에서 좋은 구절을 발견하면 곧잘 노트에 옮겨 적거나 타이핑해서 벽

에 붙여놓곤 했다. 좋아서 외우던 것도 꽤 많았다. 벽에 붙여놓은 구절들은 주로 희망에 관한 내

용이었던 것 같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사는 일이 힘들 때면, 그 구절을 읽고 또 읽으며 스스

로를 위로하거나 희망을 부추겨보는 것이었다. 이사를 할 때면 파리똥이 찍히고 색깔도 누렇게

변한 그 종이를 잊지 않고 뗀다. 그리고 무슨 기념품처럼 책갈피에 넣어 와서는 이사한 집에 다

시 붙이곤 했다.

  요즘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서민들의 일상 가계에까지 고통을 주고 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

은 또 그 가진 것의 무게를 못 견뎌 자멸하기도 한다. 생활이란 게 그렇다. 존재란 근본적으로

한하고 무상한 것. 누군들 근심 없는 세월이 있으랴. 우리는 모두 '슬픔'이라는 장르의 선후배

며 저마다 외로운 삶의 보행자이다. 찬 서리 맞은 풀잎처럼 의기소침한 존재들을 따스한 손길

어루만져주는 문장들을 골라본다.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는 실패에 관한 통쾌한 반전이 있는 명작이다. 개

식을 하던 거대한 케이블 수십 개의 통나무를 매단 채 위에서부터 아래로 순식간에 곤두박질

며 구경꾼들을 덮친다. 철탑은 거세게 흔들리며 걷잡을 수 없는 불꽃을 뿜는다. 몇 달 동안 거

을 투자하고 공들여온, 그야말로 공든 탑이 깡그리 무너져버리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조르바

그 붕괴의 장단에 맞추어 신나게 춤을 추며 노래한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 - 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

라고 부르는 - 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겉으

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한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실패했고, 돌이킬 수 없다면 더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한

사람은 이미 그 과정의 의미를 충분히 체득하였으므로 후회와 미련도 적은 법이다. 오히려 당당

한 정복자로 출발선에 다시 설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오로지 우리 자신이니 강력한 적들의 시

험에 결코 굴복하지 말 것!

  삶에 대한 절망과 우울함이 지나치거나 어떤 결백을 증명하고자 할 때 사람들은 곧잘 자살을

선택하곤 한다. 파멸을 행복으로 바꾸는 길이 책 속에 이렇게 있는데도 말이다. 철학자 버트란

럿셀은 <행복론>에서 "삶의 본질을 파괴하는 너무 깊은 절망에는 빠지지 마라"고 신신당부

를 한다. '슬픔은 힘이 세다'고 했다. 고독과 결핍은 결코 회피나 제거의 대상이 아니다. 필수영

양소처럼 오히려 존재를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나아가 삶과 창조의 원동력이자 자양분이

되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조차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

곡한다."고 했다. 얼마나 뼈저린 인식인가. '존재의 가벼움'이란 그저 헤픔이나 촐랑거림이 아니

라 어둠과 무거움을 넘어선 그 무엇이다. 많은 것을 잃고도 그 한계를 긍정하고 다시 우뚝 서기

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운명에 휘둘리거나 절망의 사슬에 묶이지 않고, 삶의 본질에

충실하여 근원으로서의 무애자애, 자유로움을 알자는 것이다. 살아있는 어떤 한 순간도 버릴 것

이 없다. 존재의 한계와 슬픔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역설로 잘 정련하고, 다듬고 요리하는

사람이 예술가이다. 슬픔의 전문가이며 고통의 권위자일수록 위대한 작품을 낳는 법이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거나 책 가운데 특히 아끼는 글, 좋은 구절을 복사해서 눈에 잘 띄는 벽

붙여보자. 굵은 글씨로 확대하고 좋아하는 색도 입히는 거다. 그 고전적인 방법은 책을 들춰

찾아 읽어야 할 때보다 더 살갑고 힘 있게 느껴질 것이다. 당신의 작은 방 바람벽에 붙어있는

벼운 종이 한 장의 글귀에서, 뜻밖의 희망과 놀라운 영감을 얻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월간에세이> (2008년 12월호)- 

                                                                

Like A Wild Flower / T.S.Nam

Life is not a problem to be solved,

but a mystery to be lived.

 

인생이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야 할 신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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