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세계

[스크랩] 폭설:오탁번/ 토막말;정양

음악의향기 2009. 1. 5. 02:38

폭설暴雪 /오탁번

 

삼동三冬에도 웬만해선 눈이 내리지 않는

남도南道 땅끝 외진 동네에

어느 해 겨울 엄청난 폭설이 내렸다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 주민 여러분! 삽 들고 회관 앞으로 모이쇼잉!

눈이 좆나게 내려부렸당께!



이튿날 아침 눈을 뜨니

간밤에 또 자가웃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몽땅 무너져내렸다

놀란 이장이 허겁지겁 마이크를 잡았다

- 워메, 지랄나부렀소잉!

어제 온 눈은 좆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왼종일 눈을 치우느라고

깡그리 녹초가 된 주민들은

회관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다

그날 밤 집집마다 모과빛 장지문에는

뒷물하는 아낙네의 실루엣이 비쳤다



다음날 새벽 잠에서 깬 이장이

밖을 내다보다가, 앗!, 소리쳤다

우편함과 문패만 빼꼼하게 보일 뿐

온 천지天地가 흰눈으로 뒤덮혀 있었다

하느님이 행성行星만한 떡시루를 뒤엎은 듯

축사 지붕도 폭삭 무너져내렸다



좆심 뚝심 다 좋은 이장은

윗목에 놓인 뒷물대야를 내동댕이치며

우주宇宙의 미아迷兒가 된 듯 울부짖었다

- 주민 여러분! 워따, 귀신 곡하겠당께!

인자 우리 동네 몽땅 좆돼버렸소잉!

 

 

...................어제 그제 눈이 꽤 내리시니 이 시가 그리웠습니다.

한 때 세간에 떠돌았던 우스갯소리로, 이처럼 멋진 글을 쓰는 그는 누구인가요?

죽어라 웃다가 생각하곤 합니다.

1943년 7월 3일 충청북도 제천 産, 깡마른 얼굴에 안경 너머의 번득이는 눈빛..

음, 이런 글이 나올 법하게 구수하지는 않는데...

아! 아주 유명한,.... 눈을 밟으면 귀가 맑게 트인다고 노래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라는 시를 쓰기도 하였지요!

하여간, 뭔 시인이 이래? 시인이 이렇게 막말을 써도 돼?

하고 느물거리며 웃다가 어찌 이리 오탁번의 글은 뭔가 다르게 번득인가 하고 부러워 죽습니다.

그러다 막말이라는 말에..정말 막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정양의 토막말이 떠오릅니다.

 

토막말    정양

 

 

 

가을 바닷가에

누가 써놓고 간 말

썰물 진 모래밭에 한 줄로 쓴 말

글자가 모두 대문짝만씩해서

하늘에서 읽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정순아보고자퍼서죽껏다씨펄.

 

씨펄 근처에 도장 찍힌 발자국이 어지럽다

하늘더러 읽어달라고 이렇게 크게 썼는가

무슨 막말이 이렇게 대책도 없이 아름다운가

손등에 얼음 조각을 녹이며 견디던

시리디시린 통증이 문득 몸에 감긴다

 

둘러보아도 아무도 없는 가을 바다

저만치서 무식한 밀물이 번득이며 온다

바다는 춥고 토막말이 몸에 저리다

얼음 조각처럼 사라질 토막말을

저녁놀이 진저리치며 새겨 읽는다

 

..어떤가요? 죽이는 시지요?

이보다 더 그리움을, 보고픔을 아름답게 내지른 글이 어디 있다는 말인지..

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시인 정양은 곽양, 이양, 김양, 조양,그렇게 불리우는 정양이 아니고

1942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까마귀 떼, 수수깡을 씹으며 등의 시집을 낸 그것도 남자시인이랍니다.ㅎㅎ

 

이제 시어선택에서 예전의 곱고 가지런한 시어들을 쓰는 기준은 넘어갔다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말의 아름다운 기준은, 진실성이라는 거지요.

보고싶어도 그냥이 아니고 욕 나오게 보고싶은 것..

죽어불게 그리운 것..

염병나게, 환장하게, 빗발치게, 쌩병나게..머리 돌게..그리운 것..

그것이 진정한 보고픔이기에 욕나오는 시어의 아름다움은

그동안의 수려하고 고운, 정숙하고 조신한, 시세계를 단숨에 깨부수고

단 시간에 우리들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된 것 아닐까? 합니다..

시원하게, 아쌀하게 말입니다.

 

어설픈 시에 대한  제 소견이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토막말을 진절머리치며 좋아합니다!

아니면, 욕을 좋아하나 봅니다.ㅎㅎ

빌어먹을! 제기랄! 뭐 이런 막말들의 대책없는 후련함들을 말입니다.

보고싶어도,좋아도 ..그냥이 아니라 죽어불게 소름돋게, 미쳐불게 니가 좋다.뭐 그렇게 말이지요.

 

욕을 안해야 품위가 높은 사람이라면 저는 품위갖춤을 그만 둘랍니다.

 

출처 : 우리와음악
글쓴이 : 차꽃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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