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cilia Bartoli - Spirit of the Arts Part I
Cecilia Bartoli - Live in Italy
비발디의 <그리셀다> 중에서 코스탄차의 아리아
'두 줄기 바람이 몰아치고'
Antonio Vivaldi (1678 - 1743) / 'Agitata da due venti'
from Griselda (Act 2)
이름 : 바르톨리
본명 : Cecilia Bartoli
직업 : 성악가
출생일 : 1966년 6월 4일
학력 : 산타체칠리아음악원
데뷔 : 바리톤 레오 누치(Leo Nucci)와 함께 TV출연 (1985년)
출 생 지 : 이탈리아 로마
관련사항
1993년 4월 휴스턴그랜드오페라와 함께 로시나 역으로 미국에 데뷔
1996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데스피나 역으로 출연
바르톨리 [Bartoli, Cecilia, 1966.6.4~]
요약
이탈리아의 메조소프라노 가수.
국적 이탈리아
활동분야 음악
출생지 이탈리아 로마
본문
이탈리아 로마에서 로마 오페라 합창단원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했으며 어머니가 그녀의 유일한 교사였다.
19세 되던 1985년 바리톤 레오 누치(Leo Nucci)와 함께 텔레비전 쇼에서 노래 부른 것을 계기로 활동을 개시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나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과 같은 지휘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두 지휘자는 그녀가 볼프강 모차르트(Wolfgang Mozart)와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의 까다로운 콜로라투라 레퍼토리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풍부한 재능을 지닌 가수라고 인정했다.
그녀가 맡은 역할에는 로시니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evigl?a》의 로시나, 역시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의 타이틀 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의 케루비노와 《코시 판 투테 Cos? fan Tutte》 도라벨라 등이 있다.
흔히 소프라노가 맡는 역인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 Don Giovanni》의 체를리나와 《코시 판 투테》의 데스피나도 맡기 시작했다. 《나를 사랑한다면》(18세기 이탈리아의 연가집), 그리고 로시니와 모차르트의 아리아와 가곡 모음곡집을 비롯한 여러 리코딩은 크게 히트했으며 고전음악의 베스트셀러 차트를 장식했다. 그러나 준비가 갖추어져야만 새로운 역을 맡고 매 시즌마다 출연 회수를 제한하는 등 자기 관리에 신중하다.
1993년 4월 휴스턴그랜드오페라와 함께 로시나 역으로 미국에 데뷔한 이후 전세계에 걸쳐 여러 차례 매우 성공적인 공연을 가졌고 다수의 리코딩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96년에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데스피나 역으로 출연했다.
20세기 말 가장 많이 인구에 회자되는 오페라계의 새로운 일원이 되었으며 음역이 넓고 고른 풍부한 음성, 희극적인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는 활달한 연기자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소위 '로시니 여결'(Rossini Heroine) 혹은 '뉴 디바'(New Diva)라 불리는 성악계의 샛별 체칠리아 바르톨리. 그녀는 현재 줄리에타 시묘나토, 크리스타 루드비히, 테레사 베르간자 등으로 대변되는 메조 소프라노의 인맥을 잇는 강력한 개성과 음악성을 지닌 이 시대의 새로운 프리마 돈나로서 세계 각국에서 엄청난 찬사와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찬란한 스포트 라이트 속의 주인공이다.
바르톨리는 1966년 이탈리아의 고도 로마에서 태어났다. 양친 모두 직업적인 성악가였던 탓에 어린시절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과 친해질 수 있었던 그녀는 특히 실바나 바조니라는 예명으로 활동했던 어머니에게서 벨칸도 창법의 기초를 닦는 등 성악가로서의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질들을 전수받고 불과 8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푸치니의 '토스카'에 양치기 소년으로 출연함으로써 생애 첫 데뷔 무대를 장식했었다.
이후 성악의 산실인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 진학, 보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나서게 된 것인데, 그녀의 이름이 무명에서 벗어나 급속한 상승곡선을 그리며 오늘날과 같이 자리잡게 되는데는 동향의 대 선배들인 바리톤 레오 누치와 소프라노 카티아 리치아렐리의 힘이 컸다.
일찍이 바르톨리의 예사롭지 않은 재능을 간파했던 이들은 성악의 전진기지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뛰어난 메조가 배출되지 못했던 수모(?)를 자국 출신의 이 나이 어린 후배가 깨끗이 씻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녀를 유럽 각국으로 위성방송될 특집 TV프로에 자신들과 함께 출연토록 주선했고, 여기서 이들과 함께 오펜바하의 <뱃노래>,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이중창>등을 완벽하게 불러낸 그녀는 비로소 자신의 그 빼어난 천재를 대외적으로 알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나이 불과 19살 때의 일이었다.
이때 이 방송을 눈여겨 본 유럽 굴지의 오페라단에선 오디션도 없이 그녀를 초청하겠다고 제안해 나섰고 바렌보임, 아르농쿠르 등의 유명 인사들도 그녀에게 함께 작업할 것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는데 단 몇 차례의 노래로, 그것도 실연이 아닌 TV방송으로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은 선뜩 납득하기 힘든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성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와같이 쇄도한 요청 가운데서 그녀가 특히 기억에 남는 하나로 꼽고 있는 것은 1989년 파리 오페라좌에서 열린 '마리아 칼라스 추모 음악제'다.
여기서 그녀는 그 위대한 예술가를 기리는 마음으로 로시니와 모짜르트의 몇몇 아리아를 불러, 만장한 청중들로부터 수십분간에 걸친 기립박수를 받아내게 되었고, 이로써 그녀는 다시 한번 하루 하루 열뛴 성원속에 커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 연주회도 역시 TV 전파를 타고 유럽 각국으로 위성중계 되었는데 이를 시청한 거장 카라얀이 그녀를 직접 전화로 초대해, 1990년 가을 짤스부르크 페스티벌에 올리기로 계획한 바하의 음악<B단조 미사>에 참여토록 할만큼 대단한 반향을 자아냈다. 비록, 이 계획은 카라얀의 급작스런 서거로 말미암아 성사되진 못했지만 훗날 바르톨리는 그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 음악가로서 잊어서는 안될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이와같이 남다른 성공의 길을 달려온 바르톨리의 최상의 특기로 내세울 수 있는 역은 무엇보다도 로시니의 최대 히트작인 '세빌리아의 이발사'의 여주인공인 로지나이다.
이역을 제대로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연기력도 연기력이려니와 막힘없이 잘 뻗어 올라가는 고음을 구사할 수 있는 완벽한 기교와 함께 앳되고 서정적인 기품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바르톨리는 마치 이역을 위해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이상적인 가창을 들려 주는 것이다.
이 외에도 바르톨리가 들려주는 음악들은 어느 것하나 그녀의 진가를 확인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가창을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 중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