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베르크변주곡 사장조
1742년 바흐는 "클라비어 연습곡집(Clavierubung book) 제4부"로서 "2단 건반 달린 클라비코드"를 위한 여러가지 변주를 지닌 아리아"로 출판 했다. 뒤에 이 곡집은 "골드베르크변주곡"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현재에도 바흐의 클라비어곡의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언듯 부제만 보더라도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피아노에 맞게 교정된 악보로 연주를 한다.
이 곡에 선택된 테마는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소곡집"에 들어 있는 사라방드였다. 그리고 마지막 30번 변주곡에는 두 개의 대중적인 멜로디인 "나는 배추와 담배에 질렸어요"와 "오래전부터 나는 너와 함께 있지 못하였네"를 삽입하였다. 이 곡은 주제를 처음과 끝에 두고 그 사이에 30개의 변주를 질서정연하게 배열하여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논리적인 구성이 잡혀 있다. 각 변주가 모두 상상력이 넘치는 것으로서 변주곡 사상 불멸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1. 개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바흐의 가장 매력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흔히 바흐는 딱딱하고 어려우며 뭔가 고루한 느낌의 음악인 것 같다는 선입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그러나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아름다움, 특히 주제곡인 아리아의 단순하면서도 명상적인 선율속에 숨어있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한번 맛보게 되면 이와 같은 편견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변주곡 중에서 이와같은 위대한 작품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매우 회의적이다. 그 누구도 단순한 아리아 한곡을 바탕으로 이렇게 다양하고 생동감 넘치며 변화무쌍한 작품을 만들어 내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만약 바흐의 다른 곡을 모두 없애버리고 이 한 곡만 남겨둔다 하더라도 그의 이름은 음악사에서 여전히 불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그 다양한 변화의 조화로움에 감탄하였던가.
음악학자 가이링거(K.Geiringer)는 바흐가 이 변주곡에서 클라비어 음악의 여러 가지 분야를 총결산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거대한 작품은 작곡자의 끝없는 상상력과 최고의 기술적 수완이 발휘된 작품으로서, 18세기의 클라비어 변주곡 중 이와 견줄만한 것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2. 작곡과 에피소드
이 곡은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 불리어지게 된 에피소드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1802년에 포르켈이라는 사람이 펴낸 바흐의 전기속에 이 작품의 작곡경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바흐가 지내던 드레스덴 주재의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골드베르그라는 쳄발로 연주자를 고용하여 그가 잠들 때까지 밤마다 옆방에서 쳄발로를 연주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불면증은 점점 더 심해져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된 백작은 그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바흐에게 밤에 들을 음악을 작곡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그 요청을 받아 작곡된 것이 바로 이 변주곡이다.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이 곡에 몹시 흡족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 불렀고 잠이 오지 않을때마다 골드베르그를 불러서 '나의 변주곡'을 연주해달라고 하곤 했다. 백작은 이 곡에 대한 사례로 금잔에 금화를 바흐에게 가득담아 사례하였으며 이는 바흐의 1년 월급을 웃도는 금액으로서 바흐가 평생 받았던 사례비 중 가장 많은 것이었다.
이 곡은 이러한 약간은 로맨틱한 에피소드를 배경으로 널리 알려져 왔지만 그 신빙성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변주곡이 출판된 것은 1742년 경이며 작곡시기는 1740년 경으로 추정된다. 이때는 골드베르그의 나이가 불과 13세의 어린 소년이었으며, 과연 바흐가 13세의 소년을 위해 이런 복잡한 곡을 작곡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게 된다. 게다가 1742년의 출판본에는 거액의 사례비를 주었다는 카이제를링크 백작에 대한 헌정사나 감사문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과연 기존의 에피소드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은 더욱 깊어진다.
카이제를링크는 바흐와 평소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었으며 바흐가 궁정작곡가의 직함을 가지게 되는 데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바흐는 38세에 성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합창장)로 부임하여 65세에 사망할 때까지 이 직위에 있었다. 이 자리는 여러 가지로 교회당국과의 마찰이 심한 자리였으며 곧은 성미에 주변성이 없는 바흐로서는 시의원들이나 목사들과의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라이프찌히의 통치자인 작센 선거후에게서 1736년 11월에 '폴란드왕 겸 작센 선거후 궁정작곡가'라는 직함을 수여받게 되어 시의 고위층 인사들과의 접촉시 매우 유리한 입장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사람이 바로 카이제를링크 백작이었다. 바흐는 평소 그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번은 새로 제작된 쳄발로의 성능을 시험하는 자리에서 바흐가 자신이 작곡한 변주곡 전곡을 연주하였었고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그 곡을 매우 칭찬하였다고 한다. 이에 바흐는 이 곡이 출판되면 한 권을 보내드리겠다고 말하였다는데, 아마도 이 일화와 평소 두사람의 친분을 바탕으로 하여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에피소드가 각색되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최근의 이론이다.
3.구성
이 변주곡은 장중하면서도 아름답고 명상적인 사라방드 스타일의 G장조 주제와 그에 이어지는 30곡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아' 라고 이름 붙여진 G장조 4분의 4박자의 주제곡은 1725년에 작곡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에 실려있는 '사라방드'에서 취해진 것이다.(이 모음곡에는 영화 <접속>에 인용되어 유명한 '미뉴엣'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어지는 30개의 변주곡 중에서 세 곡은 G단조이고 나머지는 모두 G장조이다. 각각의 변주곡은 32마디의 저음부를 공유하면서 이것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멜로디 라인이 저음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구사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아리아의 선율보다는 베이스 라인에서 변주의 소재를 취함으로써 각 변주의 멜로디나 곡의 형식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흐는 이 곡에서 사라방드, 푸가, 토카타, 트리오 소나타, 코랄, 아리아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곡들을 자유롭게 배열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여러 곡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세곡 단위로 묶여져 있으며 각 묶음의 첫곡은 항상 카논(돌림노래형식의 일종) 형식인데, 이 각각의 카논들은 한 음정씩 증가하는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다. (이를테면 3변주는 1도 카논, 6변주는 2도 카논, 9변주는 3도 카논..... 27변주는 9도 카논 하는 식으로). 그리고, 마지막 제 30변주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민요 두곡의 멜로디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 곡의 가사내용은 "나는 오랫동안 너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돌아오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다오" 라는 내용이다. 이 마지막 변주가 끝나면 다시 처음과 동일한 아리아가 반복되는데, 이는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간청에 못이겨 아리아가 다시 나타나는 것 같은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바흐는 이와 같은 음악의 구조 내에서의 수학적인 질서를 매우 중요시하였는데, 골드베르그 변주곡 뿐만 아니라 B단조 미사나 마태 수난곡 등의 대곡에서도 아주 정교한 수학적 규칙에 따라 음악이 구성되어 있어서 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감탄을 금치 못한다.
물론 이 곡은 갖가지 수수께끼와 많은 일화들을 간직하고 있으나 우리는 거기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순함 속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함과 다채로움, 그리고 무한한 생명력, 음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세계의 위대함, 이러한 것들이 이 곡에 숨어있는 진정 위대한 보물들이며 바흐 음악의 진면목이 이 한곡에 집대성 되어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은 웹진 'Go! classic'에서 인용함.-
4.곡 해설
⊙주제(아리아): 장중한 사라방드풍의 곡이다. 장식음도 많이 쓰고 있다. G장조, 3/4박자. 다만 이것은 바흐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나, 1725년의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제2권에서 발견된다. 또한 전술한 베이스의 기본선은,바흐 이전 혹은 바흐와 동시대의 작곡가 샤콘이나 파사칼리아의 주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퍼어셀에도 그 예가 있다. -"The English Patient"에서 줄리엣 비노쉬가 폭탄이 있는 피아노인 줄 모르고 연주하던 피아노곡
⊙제1변주: 제1에서 제4변주까지는 1단 건반으로 연주된다. 제1변주는 조도 박자도 주제와 같아 2성으로 씌어져 있으며 전주곡풍이다.
⊙제2변주: G장조 2/4박자. 3성으로 씌여졌으며, 위의 2성부가 주제 선율을 암시한다. 베이스는 물론 기본선에 따른다.
⊙제3변주: G장조 12/8박자. 동음의 카논으로 3성. 모방은 1마디 늦게 행해진다.
⊙제4변주: G장조 3/8박자.동기의 모방을 둔 활기 있는 곡. 여기서도 기본선이 베이스에 있다.
⊙제5변주: G장조 3/4박자. 1단 또는 2단의 건반에 의한 경묘한 곡으로 되어있다.
⊙제6변주: G장조 3/8박자. 다시 1단 건반으로 2도의 카논. 모방은 1마디 늦다. 기본선은 위의 2성에 감추어져있다.
⊙ 제7변주: G장조 6/8박자. 1단 또는 2단의 건반으로 연주되는 시칠리아나풍의 곡. 따뜻한 분위기가 피어 오른다.
⊙제8변주: G장조 3/4박자. 2단 건반용의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피아노로는 연주하기 어렵다. 2성의 활발한 토카타풍의 곡이다.
⊙제9변주: G장조 4/4박자. 3도의 카논으로서 1단 건반으로 연주된다. 3성으로 2성만 이 카논, 베이스는 자유 대위법으로 움직인다.
⊙제10변주: G장조 2/2박자.4성의 푸게타로 1단 건반용의 것. 주제의 기본선은 그래도 유지되고 있다.
⊙제11변주: G장조 12/16박자. 2단 건반을 위한 토카타풍의 곡이다.
⊙제12변주: G장조 3/4박자. 1단 건반에 의한 4도의 카논인데, 모방은 전회형에 의하고 있다.
⊙제13변주: G장조 3/4박자. 2단 건반에 의한 것으로 정치(精緻)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한가로운 곡이다. 현악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제14변주: G장조 3/4박자. 2단 건반용으로 다시 쾌활해지며, 전주곡 혹은 토카타풍의 것으로 되어 있다.
⊙제15변주: g단조 2/4박자. 1단 건반에 의한 5도의 전회 카논으로 안단테라고 지정되어 있다. 표정이 부드러운 우아한 곡이다.
⊙제16변주: G장조 전반은 2/2박자, 후반은 3/8박자. 전술한 바와 같이 <서곡>이라고 적혀 있다. 프랑스풍 서곡의 느리게-빠르게-느리게라는 정형(定型)의 마지막 느리게 생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전반은 안단테 정도의 2성의 전주곡풍의 것이고, 후반은 알레그로 정도의 3성의 푸게타이다. 어느 것에나 주제의 기본선은 유지되어 있다.
⊙제17변주: G장조 3/4박자. 활발한 2성부의 토카타풍의 곡으로 2단 건반용이다
⊙제18변주: G장조 2/2박자. 1단 건반용의 6도의 카논이다. 베이스는 자유 대위법으로 가담하고 있다. 속도는 떨어지지만 명랑하다. 주제의 기본선은 위의 2성에 감추어져 있다.
⊙제19변주: G장조 3/8박자. 1단 건반을 위한 것으로 무곡풍이기도 하나, 3성을 자유 모방 대위법을 쓰고 있다.
⊙제20변주: G장조 3/4박자. 2단 건반용의 화려한 기교적인 곡으로 되어 있다. 피아노로는 연주가 불가능하다.
⊙ 제21변주: g단조 4/4박자. 7도의 카논으로 반음계적인 서법(書法)도 쓰고 있다.
⊙제22변주: G장조 2/2박자. 푸가풍의 곡으로 온건한 느낌을 준다. 화성적인 두께가 있다.
⊙제23변주: G장조 3/4박자. 모방 대위법을 쓰고 있는데, 즉흥적인 요소가 있고 번쩍이는 화려함도 있다. 음계적인 진행의 애용이 두드러진다. 2단 건반용.
⊙제24변주: G장조 9/8박자. 8도의 카논으로 1단 건반용의 곡이다
⊙제25변주: g단조 3/4박자. 속도는 아다지오 정도이며, 로맨틱하고 환상적이다. 2단 건반용으로 반음계적 서법의 애호가 눈에 띈다. 지금까지의 기분을 싹 바꾸는데 도움을 준다.
⊙제26변주: G장조 전주곡풍 취향의 것으로 18/16과 3/4박자의 선율을 대립시키고 있다.
⊙제27변주: G장조 6/8박자. 2단 건반용의 9도의 경묘한 카논이다. 이 카논만이 2성부로 되어 있고, 자유 대위법의 성부가 없다.
⊙제28변주: G장조 3/4박자. 2단 건반용의 기교적인 곡으로 트릴이 일관하여 두어져 있어 화려한 효과를 낸다.
⊙제29변주: G장조 3/4박자. 1단 또는 2단의 건반을 위한 호모포닉이고 기교적인 곡.
⊙제30변주: G장조 4/4박자. 1단 건반용으로 쿠오들리베트(Quodlibet)라고 적혀있다. 이것은 중세기부터 행해진 창법으로, 주지하는 민요풍의 선율을 몇 개 짜 맞춘 것을 말한다. 바흐는 여기서 베이스에 변주의 기본선을 명확하게 내고, 그 위에 2개의 민요를 실었다. 모두 당시 파티 같은 행사에서 애창되었다고 한는데, 그 하나는 17세기의 이탈리아 민속 음악의 베르가마스크에 유래하는 '캐비지에 순무'이며,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군'이라는 독일 민요이다. 그리고 곡은 이 3개의 선유를 대위법적으로 얽으면서 나아간다.
⊙아리아 다 카포: G장조 3/4박자. 마지막의 제30변주. 다음에 아리아로서 주제가 재현하여 전체의 통일과 마무리를 주게 되어 있다.
글렌 굴드와 바흐 그리고 골드베르크 변주곡
일찌감치 콘서트를 포기한 탓인지 글렌 굴드의 음반 레퍼토리는 상당히 다양하다. 하지만 그 모든 음반들이 글렌 굴드라는 명성에 걸맞는 것들은 아니었다. 평생동안 편식(그는 고기는 물론 야채도 즐겨먹지 않았다. 성인이 된 뒤 그는 거의 크래커와 오렌지 주스 같은 것들로 연명했다고 한다)과 기행으로 일관한 그 답게 좋아하는 작곡가와 곡들도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 단적인 예로 그는 쇼팽과 슈베르트를 연주하지 않았고, 심지어 브람스의 경우에도 녹음 직전에야 겨우 연습하여 녹음에 임했다. 더 나아가 그는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작곡가는 오로지 요한 세바스찬 바흐였고,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점에서(이 말은 어떻게 연주해야 한다는 명확한 설정이 없다는 점에서) 바흐 이전의 영국 작곡가 윌리엄 버드와 오를란도 기본스를 꼽았다.
굴드의 데뷔 음반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처음 출반되었을때 평론가들은 하나같이 ``미친놈의 연주``라고 혹평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의 모든 해석과 연주 전통을 깡그리 무시하고 극히 개성적인 아티큘레이션과 미친 듯이 질주하는 듯한 템포로 곡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굴드의 연주는 이제까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음악이기 때문이다.
1982년 그의 나이 50세 때 그는 뇌졸증으로 사망할 때까지 많은 양의 음반을 녹음하였는데, 그의 마지막 레코딩도 데뷔 때와 같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살아 있었을때 유일하게 같은 곡이 재녹음되어 출반된 경우인데, 데뷔시의 충격적인 반응에 비교할 수 있을 만큼 두 번째 녹음에서도 그는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고있다.
첫번째 음반에서는 엄청난 빠르기와 비할데 없는 리듬감으로 압도적인 인상을 심어 주었다면, 두번째 음반에서 그는 헤아릴 수 없는 고독을 내적인 성숙성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굴드 음반 목록의 처음과 시작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과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구조역시 처음과 끝이 동일한 아리아가 위치하고 있고 그 사이에 30개의 변주곡이 연주되고 있다는 점과 비교하여, 굴드의 생애가 이 곡의 구조와 완벽한 유사성을 갖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굴드와 이 곡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현재는 글렌 굴드를 비롯해 이 곡은 피아노로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인 줄 알지만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하더라도 쳄발로, 하프시코드 연주가 좀더 일반적인 연주였다. 그 대표적인 연주자들이 바로 란도프스카였다. 그러던 것이 로잘린 투렉과 같은 여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로 연주했고, 이후 글렌 굴드에 이르러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오늘날엔 도리어 쳄발로로 연주하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가 되었으니 짧은 시간에 정말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1955년 1월 11일 저녁, 굴드는 뉴욕 데뷔연주를 성공리에 마쳤고, 다음 날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마스터웍스 시리즈에 참여하게 되었다. 굴드는 메이저 음반사에서 출반하는 자신의 첫 레코딩으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선택하였고, 당시만 해도 지루하고 변화없는 곡으로 인식되어 피아니스트들의 일반적인 레퍼토리에 끼지 못하고 한켠에 밀쳐져 있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바흐를 탐닉해 오던 굴드는 자신의 내면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곡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이 때 제작된 음반은 레코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음반 중의 하나가 되었고, 발매 당시에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며 23세의 굴드를 단숨에 정상급 피아니스트의 반열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1981년에 굴드는 재녹음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26년전에 녹음했던 장소에서 골드베르크변주곡을 두 번째로 녹음했다. 굴드는 변주들이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고 보다 큰 전체 속에서 하나의 리드미컬한 파동, 화성, 그리고 근원적으로 동일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를 가진 개체들로 해석함으로 이전의 녹음과는 전혀 다른 두 가지의 해석을 남겼다. 굴드는 기술 (테크닉이 아니라 테크놀로지라는 의미에서)이 만들어주는 가능성을 언제나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첫 번째의 녹음이후 25년간 이루어진 녹음 기술의 놀라운 발전은 굴드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재녹음하도록 결심하게 하는 데에 중요한 동기를 부여했다고 생각된다.
그의 데뷔 레코딩 곡이기도 했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신녹음은 그의 마지막 녹음이 된다. 굴드는 이듬해 1982년 10월 4일 토론토에서 51세의 이른 나이에 뇌졸증으로 사망한다.
그가 죽기전 괴이한 일생을 살아온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 에도 조문객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1982년 10월 그의 장례식에는 3000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왔다. 그의 묘는 캐나나 토론토의 마운트 플레즌트 공원묘지에 있는데 사람키만한 스프루스 나무가 한그루 있다. 그 나무는 피아노 건반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는 나무이다. 그의 묘지석에는 뭐가 쓰여 있을까.(?) 골드베르크 변주곡 첫 음표가 부조되어 있다.'골든베르크 변주곡 첫번째곡 아리아가 사분의 삼박자이로군'
그는 1955년 데뷔 연주와 81년 이 마지막 녹음까지를 골드베르크 연주로 남기고 있어, 이 곡에 관한 한 독보적이고 중요한 연주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첫 아리아의 깊은 서정과 낭만적인 해석에 서부터 제1변주의 놀라운 천재성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어지는 30개 변주의 탁 월함, 그리고 또 한 번 반복되는 아리아의 재현 연주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 한 초개성적인 연주다. 그 누구도 감히 생각해 내지 못한 골드베르크의 아름다운 아리아의 조형은 연주사의 한 획을 긋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