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바로크 시대 음악과 미술의 상관관계
1.바로크 시대-1600년부터 1750년까지의 약 150년간을 ‘바로크(Baroque)’ 시대라 한다. 절대주의의 궁정과 반 종교개혁의 정신을 모체로 하여 개화한 예술로 로마를 중심으로 전 유럽에 번 짐. 풍부한 활력, 힘찬 움직임, 강렬한 감정, 복잡하고 다양한 성격을 가진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지녔 고 조화와 균형이 파괴된 데서 오는 부조화나 황당무계함 등을 문화 적 특징으로 갖고 있다.
엄격하고 품위있는 외양과 이지적인 감각을 지닌 르네상스 양식에 비해, 바로크 양식은 열정적이고 감각적인 기풍을 지녔음. ‘Baroque’란 포르투갈 말로 ‘깨어진 진주, 찌그러진 진주’라는 뜻으로 ‘Baroque’란 시대 양식의 개념은 미술, 건축 분야에서 일어나 그 후 음 악사의 분야에 이행되었다.
2.바로크 시대 예술의 특징-바로크 건축물은 밧줄처럼 꼬이고 곱슬머리처럼 구불구불한 패턴의 장식을 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온통 조각과 그림으로 치장을 했다. 당시의 음악도 구불구불하고 둥글둥글 돌아가는 듯하고 장식과 꾸밈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음악도 바로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최초의 시도가 쿠르트 작스의 논문인 <바로크 음악>이며 이 무렵부터 음악사에도 적용되어 일반화하 였다.
3.바로크 미술-바로크 양식은 자유로운 정신에서 분출하는 자유 분방함이 율동감을 나타내는 곡선이 예술적 표현으로 추구됨. 회화에서는 장식적이고 화려한 화법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빛과 그늘을 강렬 하게 대비시킨 인상파적인 화풍이 있었음. 르네상스와 비교해서 바로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보다 빛나는 색채, 음영과 질감의 풍부한 대비 효과, 자유롭고 표현적인 붓질 등으로 비고전적, 동적, 남성 적, 불규칙적인 성격과 심한 과장성의 표현이다. 대표적인 작가는 카라밧지오,푸생,렘브란트,루벤스, 반다이크,벨라스케스,베르메르 등이다.
4.바로크 음악-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면 대체로 극음악이 탄생한 1600년경 부터 바흐가 죽은 1750년경 을 말하는데 이 시대는 르네상스 시대에 싹튼 인간중신적 세계관이 팽배해져서 점차 시민계급을 성장시 켰고 사상적인 면에서도 합리적인 관념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바로크는 바로 이 시대의 약동감을 특징으로 하여 웅장하고 거대하면서도 거기에 다채로운 장식이 함께 가해지는 것이다.
바로크 이전의 르네상스 시대는 조용하고 질서정연한 아름다움을 귀중히 여겨왔는데, 16 세기가 끝날 무렵부터는 딱딱한 형식에서 벗어나 대단히 풍부하고 활기에 넘치는 자유로운 표현을 되찾게 되었다. 즉, 형식을 존중하는 예술이 ‘동그란 진주’라면 바로크 예술은 ‘타원형의 진주’라 할 것이다. 이러한 생 각은 처음 건축에서 시작되었는데 음악의 세계에서도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것이 등장하여 오페라 가 탄생되고 악기가 개량되는 등 눈부시게 발전해 나갔다.
코렐리, 텔레만,비발디 등의 음악가가 바로크 시대의 대표격이며 후반부에는 클래식 음악의 큰 기틀을 세웠고 바로크 음악을 완성시킨 바흐와 헨델, 두 사람이 크게 활약했다. H.리만처럼 이 시대를 <통주 저음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바로크 음악은 20세기에 들어 서면서 재인식되었으며 특히 제2차 세 계 대전 이후 각국에서 많은 지지자를 얻고 있다.
Ⅱ.바로크 음악의 특징
1.‘인간의 목소리(노래 위주)’였던 중세,르네상스 시기에 그저 반주에 불과했던 악기가 사람의 목소리 와 감정 간의 조화를 꾀하며 바이올린,첼로,쳄발로 등으로 특별히 작곡됨. 2.바로크의 장대함과 활기를 표현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르로 오페라의 등장 및 관현악의 눈부신 발달. 3.예술가 개인의 느낌보다 인간의 갖가지 감정을 재현. 4.강박과 약박의 개념이 별로 없던 전 시대에 반해 악상(accent)의 개념이 자리를 잡게 됨. 5.화성으로 인해 결합되는 확고한 저음(통주저음)과 유려한 상성부를 지님. 때문에 규모가 크고 강약 의 대조도 심하지만 늘 통일된 아름다움을 지닌 산뜻한 음악으로 존재. 6.대표적 작곡가:코렐리,비발디,바흐,헨델 7.대표곡: 비발디<사계>, 바흐<토카타와 푸가>,헨델<메시아> 외
Ⅲ.텔레만에서 비발디,바흐 헨델까지
Ⅳ.새롭게 부각되는 원전연주 감상
*원전연주란?-‘정격연주’로도 불리며 말 그대로 처음 작곡가가 생각한 당시의 악기 그대로를 복원하여 처음 작곡한 악보대로 그 당시의 연주기법을 사용해서 당시의 연주장소에서 당시의 연주자의 마음으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1829년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연주한 멘델스존이 최초의 원전연주의 시초이다.
Ⅴ.바로크 시대의 꽃 카스트라토
*카스트라토란?-라틴어의 동사 ‘castrare(거세하다)’에서 나온 말이며 변성기 전의 소년을 거세하면 성 인이 된 후에도 소프라노나 알토의 성역을 지니며 음질적으로도 소년이나 성인 여성에 비해 씩씩하고 순수하며 또 음역도 훨씬 넓다. 때문에 16세기 이후 가톨릭성당에서 많이 쓰였으며 17∼18세기의 이 탈리아 오페라에서도 많이 쓰였다. 그 후 비인간적인 행위 라는 이유로 금지되었으며 오페라에서도 19 세기 이후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늘 날의 카운터테너는 카스트라토와는 다르며 가성(팔세 토)을 구사하는 남성가수를 가리킨다.
Ⅵ.바로크 시대의 오페라
바로크>에로의 움직임은 이미 16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고대 그리스 의 문예 부흥 운동이 한창이었으며, 각지에 아카데미아라고 일컫는 그룹이 많이 생겨나 활발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었다. 1580년경 피렌체의 귀족 다르디 백작의 저택에서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은 문인이나 음악가들이 모여들어 고대 그리스 비극의 부흥이나 음악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논의가 이루 어졌다.
<카메라타(Camerata)>라고 불리던 그들은 당시 폴리포닉하게 구성된 음악에서는 몇 개의 소리가 동시 에 복잡하게 뒤얽혀 가사를 분명히 알아들을 수 없다고 비난하며 성악곡인 이상, 가사가 명료하게 전달 되고 또 가사의 내용에 따른 음악적 표현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고안된 것이 말의 억양을 아주 자연스럽게 모방하여 가사를 읽는 것같이 읊조리는 한 줄기 선율선(旋律線)과, 단순한 화성 반주로 이루어지는 낭송 양식의 독창가(mondy)였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야코포 레리의 오페라는 프랑스의 왕 앙리 4세와 메디치 가(家) 처녀 마리아와 의 혼례를 축하하여 1600년에 상연된 페리와 테너 가수 카치니(Giulio Caccini: 1545경∼1618)의 합작 오페라 <에우리디케>다.
페리와 카치니의 음악은 둘 다 극히 단순한 반주(통주저음)로 뒷받침되고, 확실히 말하는 것처럼 가사를 읊는 낭송 형태의 독창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아마 이것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아주 참신한 음악으로 비쳤겠지만, 말을 명확히 전달한다는 것이 지나치게 두드러져서 음악적으로는 조금 평면적으로 흘러 결 코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런 양식은 위대한 천재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 1567∼1643)의 출현에 의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다.
몬테베르디는 1613년부터 1643년 죽을 때가지 당시 이탈리아에서 가장 전위적인 활동상을 보인 베네 치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악장(樂長)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한 세기가 바뀌는 시기에 활동한 사람으로 서, 1584년의 처녀작부터 1642년의 최종 작품인 오페라 <포페아의 대간>에 이르기까지를 더듬어 보면 르네상스로부터 바로크 음악에로의 변천 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아니, 그는 시대 변화의 원동 력일 뿐 아니라 나아가 그 추진 자이기도 한 음악가였다.
그에 의하면, 말에 적절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종래의 작곡법 규칙에서 벗어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불협화음을 표현 수단으로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드리갈레 곡집> 제5권에 포함되 어 있는 5성(五聲)의 작품 중에는 대담한 불협화음에 의한 효과적인 표현법이 나타나 있는데, 몬테비르 디는 우선 다성 음악에 있어서 극적 표현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1670년, 만토바에서 상연된 그의 첫 오페라 작품인 <오프페우스> (대본은 알레산드로 스 트리치오)에서 다른 형태로 구현되었다. 몬테베르디는 피렌체의 선배들이 즐겨 쓰던 낭송양식을 기본으 로 하면서도 한층 더 변화가 풍부한 어법을 쓴 것이다. 그리하여 <오프페우스>는 극작품으로서 뿐만 아 니라 음악 작품으로서도 충실한 것이 되었으며, 이 단계에 이르러 오페라는 드디어 시작의 경지를 넘어 참다운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그 후로 오페라는 점차 각지로 확산되어 갔으며, 지지 층도 두터워졌다. 1613년, 몬테베르디가 베네치 아의 산 마르코 대성당에 부임한 후로는 베네치아는 오페라의 중심지가 되었고, 17세기 말까지 흔들리 지 않는 확고부동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몬테베르디 자신이 그곳을 위해서 많은 오페라를 작고했지만 그 음악은 대부분 소실되어 버리고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은 겨우 가장 만년에 작곡한 <율리시즈 귀환(1640)>과 <포페아의 대관(1642)>뿐이다. 그리고 그의 오페라의 편린들은 타소(Torquato Tasso ; 1544∼95)의 장대한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의 제 12가(歌)로서 작곡이 된 <탄크레디와 클로린다의 싸움(Il combattimento di Tancredie Clorinda ; 1642>에서 볼 수 있다.
베네치아의 오페라는 몬테베르디가 죽은 후 그이 사랑했던 제자인 카발리(Pieto Francesco Cavalli ; 1602∼76)와 체스티(Marc Antonio Cesti ; 1623∼69)등에 의해서 계승되었다. 그들은 말의 요소가 남 아 있는 종래의 음악을 이야기의 진행을 전해 주는 페시테티브[ 唱]와 등장 인물의 심정을 노래하는 한결 더 서정적인 아리아로 점차 분리시켜 갔다.
오페라는 베네치아에만 한정된 현상이 아니었다. 로마, 피렌체, 볼로냐 등지에서도 활발히 상연되었으며, 17세기말부터는 활동의 중심지가 나폴리로 옮겨졌다. 나폴리파 오페라는 스카를라타(Alessandro Scarlatti ; 1660∼1725)라는 천재가 등장한 후 모차르트에 이르는 18세기까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형 을 확립하게 되었다.
나폴리파의 오페라는 오페라와 직접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서곡(신포니아)으로써 막이 오른다. 이것 은 빠른 부분, 느린 부분, 빠르고 경쾌한 부분 등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 소위 이탈리아풍 서곡의 구조 를 취하는 것인데 그 구성법은 훗날 고전파 교향곡의 모태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나폴리파에 속하는 사람들은 새로 오페라 부파라는 장르도 확립했다. 이것은 종래 3막으로 구성된 신화, 역사극 및 비극을 취급한 오페라(오페라 세리아)의 막간에 삽입시킨 비교적 짧은 희극 풍의 인테르메 초(간주곡)에서 발전한 코믹한 오페라인데, 우에는 오페라 세리아보다 더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는 실 없는 줄거리가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간드러진 아리아나 중창이 레시테티브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 부파의 가장 초기 작품으로서는 훗날 일대 오페라 논쟁을 야기한 계기가 된 페르골레시아 (Giovanni Battista Pergolesi ; 1710∼36)의 <마님이 된 하녀>를 들 수 있는데, 이런 경향은 모차르트 의 <피가로의 결혼(1786)>이나 <여자는 모두 이런 것(1790)>에서 그 정점에 이르게 된다.
-감상곡-
비발디의 음악 비발디<사계>/이무지치 실내악단 비발디<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엠마 커크비
원전연주
코렐리<합주협주곡 op.6-4 D장조>1악장 아다지오-알레그로 알바노니<협주곡 Bb장조>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카스트라토와 카운터 테너 영화 <파리넬리>/ 헨델<<리날도>중<울게 하소서> 안드레아스 숄/헨델<세르세>중<나무 그늘 아래서> 메라 요시카즈/<미녀와 야수>
바흐와 헨델
바흐/세속 칸타타<양들은 평화로이 풀을 뜯고>/<토카타와 푸가>/카나디안 브라스 앙상블
헨델/<메시아>중<할렐루야>/합창 /카나디안 브라스 앙상블<옴브라 마이 푸>/캐슬린 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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