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The Kingdom (Where Nobody Dies) 2. Les Amants 3. Canto Nascosto 4. Il Canto Delle Differenze 5. Una Piccola Chiave Dorata 6. O Toi DA¨sir 7. Lighea 8. Coralie 9. Un'alba Dipinta Sui Muri 10. Stefi's Song 11. Canzone Di Nausicaa
Racconti Mediterranei - 옥타비아누스 대제의 평화로운 지중해를 생각하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었다. 오랜 옛날 서양문명 천하를 주름잡던 로마를 생각하며 나왔던 말이다. 장화모양의 나라 이탈리아는 지금은 유럽의 그저그런 선진국 대열에 있는 나라이지만 그들의 오랜 문명과 아아치로 대표되는 건축과 예술 양식에 있어서는 오늘날까지 자부심을 갖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치와 경제등을 많은 면들을 미국이라는 강대국에 내어줬을 지 모르지만 그들의 예술만은 하이퀄리티를 자랑하며 오늘에까지 많은 예술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클래식 음악에 특히나 강세를 보이는 이 나라는 그들의 대중적인 음악들에서도 상당한 예술혼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과거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New Trolls라는 밴드(Adagio라는 곡은 정말로 인기가 많았다.)라던가, P.F.M.등이 보여주었던 이들의 대중음악은 그냥 '대중음악'으로 넘겨버리기엔 너무나 아까운 느낌의 예술품들이었다. 이들은 클래시컬한 센스를 바탕으로 상업성과 예술혼을 적절히 배합시키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아티스트들이었던 것이다.
자, 그렇다면 재즈는 어떠할까. 바로 이탈리아 재즈를 대표하는 레이블 EGEA에서 4장의 리더작을 발표하고 있는 Enrico Pieranunzi의 앨범들이 이탈리안 재즈를 대표하는 앨범들 가운데 하나로 뽑기에 필자는 주저함 없었다. 클래시컬한 느낌으로 듣기 힘든 임프로바이제이션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그들만의 정서로 인터플레이되는 연주는 정말 예술적인 재즈작품을 보는 듯 하다. 이 앨범은 일단 편성 자체도 아주 트기하다. 웬만한 재즈앙상블에는 빠지는 법이 없는 드럼이 빠지고 베이스가 모든 리듬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앨범에 있어서 리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첫곡 'The Kingdom'에서 들을 수 있는 베이시스트 Marc Johnson의 연주는 아르코(활로 켜는 주법)과 피치카토(손가락으로 피킹하는 주법, 많은 분들이 콘트라베이스의 피치카토는 재즈에서만 쓴다고 잘못 알고 있는 매니아들이 많은데, 엄연히 이 주법은 재즈와 클래식 모두에서 쓰이는 주법이다.)를 병행하며 얼핏 들으면 클래식음악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만한 유연함으로 시종일관 분위기를 이끌어 나간다. Marc Johnson은 Pat Methney등의 세계적인 아티스트와도 협연하며 세계적으로 재즈팬들에게 이름을 각인시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본 앨범은 Enrico의 리더작이지만 표면에서는 Gabriele Mirabassi의 클라리넷 연주가 더 빛을 발한다. Gabriele Mirabassi는 Enrico와 마찬가지로 EGEA레이블에서 리더작을 발표하고 있는 클라리네티스트로 역시 이탈리안 재즈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정적으로 다가오는 클라리넷의 우유빛 음깔의 향기와 튀지 않으려는 듯 서정적으로 흐르는 Enrico의 피아노, 여기에 물 흐르듯 유연하게 받쳐주는 Marc Johnson의 베이스는 시종일관 앨범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
일단 첫 곡인 'The Kingdom'에서부터 물흐르는 서정적인 분위기는 시작된다. 일반 재즈 팬들뿐만 아니라 뉴에이지 등의 이지 리스닝 뮤직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컬리티를 제공하면서도 보통의 이지 리스닝 뮤직과는 사뭇 다르게 다가오는 점은 클래시컬한 분위기와 서정적인 연주 안에서도 빛을 보이는 클라리넷과 피아노의 솔로연주다. 베이스는 곡이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중후하게 받쳐주며 아르코와 피치카토를 병행한 독특한 연주를 들려준다.
'Les Amants'는 과거 이 앨범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던 기폭제가 되었던 곡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Enrico의 피아노 터치에 Gabriele Mirabassi의 클라리넷 연주는 아주 단아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Enrico의 연주 가운데 가장 그만의 탐미성이 잘 나타난 곡으로, 어떨 때는 꿀보다 달콤하고 어떨 때는 약보다 쓰디쓴 사랑을 아름다운 선율로 표현한 탐미정신은 정말 일품이다. 이 앨범이 명반으로 뽑힐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이 곡이 가져다 주었던 예술정신에 기인할 지도 모르겠다.
'Canto Nascosto'는 약간의 우울한 미학이 Gabriele Mirabassi의 클라리넷 선율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과거 이탈리안 팝 록 밴드인 New Trolls의 'Adagio'의 그 감흥을 그대로 전해준다. Gabriele Mirabassi의 초반부 클라리넷 선율도 일품이지만 Enrico의 피아노에서 보여지는 서정미는 정말 감동의 드라마같다.
'Il Canto Delle Differenze'는 약간 속도가 붙은 연주이지만 절대 이들은 방정을 떨지 않고 그들만의 절제미와 침착성을 유지하고 있다. 드럼을 뺀 편성이라 비트상에서의 약점이 있을까 걱정하는 눈치가 있다면, 빨리 접어버리는 것이 좋을 듯 싶다. 오히려 드럼이 빠진 덕에 약간 빠른연주에서도 서정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퀄리티가 있다. 하지만 중반부의 Marc Johnson을 비롯한 멤버들의 솔로잉은 혼신을 다한 연주를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이 앨범 최고의 메타포인 '아름다움'과 '탐미주의'를 강조한 'Una Piccola Chiave Dorata'와 'Lighea'로 이어지는 뒷 트랙들은 모두 '탐미적 서정성'을 내포한 뛰어난 트랙들이다. 이 앨범의 모토인 서정미야 입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했으니 잔소리가 될 것도 같다. 10번트랙'Stefi's Song'을 주목해보자. 'Les Amants'에 비견될만한 청명하고 단아한 아름다움이 보이는 이 트랙은 맨 앞의 두 트랙을 듣고 푹 빠져버린 매니아들에게 또한번의 감동의 물결을 주기에 충분한 곡이다. 특히 서정적인 연주후에 보여지는 Gabriele Mirabassi의 아름답고도 격정적인 클라리넷 선율은 듣는 이의 귀를 감동의 눈물로 울리고 갈 만한 미학적인 곡이다. Marc의 베이스 라인 역시 Charlie Haden 뺨칠만한 따뜻한 연주로 피아노와 클라리넷을 감싸주고 있다. 앨범은 또 하나의 감동적인 탐미정신을 보여주는 곡 'Canzone Di Nausicaa'(역시 Marc의 아르코 연주가 전면에 나타나는 곡이기도 하다.)의 나즈막한 3인방의 연주고 끝을 맺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앨범은 클래시컬한 재즈의 미학을 본격적으로 보여주는 곡이라 할 수 있다. EGEA 레이블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재즈 매니아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이들은 임프로바이제이션이 난무하는 미국의 재즈와는 또 다른 재즈적 접근으로 다가가는 민족적 접근과 그들만의 서정미와 탐미정신, 낭만주의 등의 크게 기인할 수 있다 하겠다. 장화모양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이들의 연주는 미국식의 스윙과 비밥 재즈에 젖어 있던 나에게 잔잔한 물결이 되어 다가왔다. 멋진 자켓만큼이나 단아하고 정돈된 연주를 접할 수 있는 이 앨범에 필자는 비록 재즈적인 즉흥성은 많이 없지만 과감히 만점을 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 음악이 골수 매니아들에게는 재즈로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즈다 아니다는 음악을 들음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닌다. 아니 못 된다. 장르를 따져 음악을 차별하는 것은 음악매니아들은 진정한 음악매니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과감히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 앨범의 강한 메타포가 증명해 줄 것이다. 앨범을 모두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는 여운은 다시 이 앨범에 손이 저절로 가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겨울밤 Enrico 3인방의 아름다운 이슬같은 이 앨범을 들으며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기원전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왕) 시절의 지중해의 평안함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지 감히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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