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lo Gesualdo (1561-1613)
 

이태리 작곡가. 나폴리-스페인 왕가 출신. 나폴리와 시칠리아를 다스리는 공작이었다. 주로 마드리갈을 작곡했다. 5성부로 된 마드리갈 작곡집을 6권 펴냈다(1594, 1594, 1595, 1596, 1611, 1613).

제수알도의 아버지 돈 파브리지오(Don Fabrizio) 공작은 아카데미를 결성하여 음악을 장려했다. 그 곳에서는 당시 이태리의 이름 있는 음악인들이 있었다(예: Giovanni Macque, Bartholomeo Roy, Pomponio Nenna). 그는 어릴 때부터 폼포니오 넨나로부터 베이스 류트를 배웠다. 제수알도는 쉬피오네 스텔라(Scipione Stella) 등 여러 마드리갈 작곡가들을 모아 자신만의 아카데미를 결성했다. 이렇게 그는 왕자 시절에 음악에 몰두했다. 1585년 형 루이지(Luigi)가 죽은 후에 그는 공작위 계승자가 되었고, 그 다음 해에는 공작이 되었다. 그는 신분에 걸맞게 귀족출신이었던 마리아 다발로(Maria d'Avalos)와 결혼하였다. 부부는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성격적 차이로 부부사이는 원만하지 못했다. 1590년 제수알도는 부인과 정부 돈 파브리치오 다 카파라(Don Fabrizio da Cafara)를 밀회현장에서 붙잡아 죽였다. 제수알도는 둘째 딸도 죽였는데, 이는 그녀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1594년 페라라로 가서 1594년 엘레노라(Eleonora d'Este)와 재혼했다. 그는 페라라에서 궁정 오르가니스트였던 루짜스키(Luzzasco Luzzaschi)를 알게 되었고, 그의 반음계적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이 시기에 그는 아직도 전통적인 방식의 마드리갈을 작곡했고 이것들은 모두 1594년 이전에 쓰여진 것들이었다(제1-제4 마드리갈집). 그의 과도한 반음계와 고통의 표현에 집착하는 작품성향은 생의 말년에 나타났다. 1594년 이후에 쓰여진 이 마드리갈 곡들은 그의 교회음악과 함께 묶여 발표되었다(제5-제6 마드리갈집).

제수알도는 1596년 다시 나폴리로 돌아와 거기에서 일생을 마쳤는데, 자기연민과 고뇌 등에 휩싸여 살았다. 두 번째 부인과의 관계도 행복하지 못했다. 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도 잃었다. 또한 첫째 부인에게서 난 큰딸도 잃었다. 제수알도는 53세쯤의 나이에 죽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여기에 두 번째 부인도 책임이 있다고들 했다. 

 

제수알도의 마드리갈은 가사를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그만의 독특한 경향을 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동경, 몽환적인 사랑 등이 그것이다. 또한 의미가 많지 않으나 운(韻)의 놀이로 가득한 가사도 즐겨 선택했다. 그는 탓소(T. Tasso)의 시에 주로 곡을 붙였다.

그는 이러한 시를 음악으로 만들 때에 감정적 가사 부분을 전체적인 형식보다 더 중요시하였다. "죽음", "고통스러운 기쁨"과 같은 가사에 그는 많은 주의를 기울였는데, 이러한 가사가 나오는 부분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반음계적으로 음악을 처리하였다. 이는 그의 교회음악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였다. 그는 성경 가사의 선정과 그것을 작곡하는 방식에서 마드리갈 작곡에서와 별 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즉"고통"을 주제로 하는 가사를 골라 거기에  반음계의 연속을 사용한다. 그의 반음계는 당시의 진보적 음악가였던 마렌치오나 몬테베르디를 엄청나게 앞선 것이었다.     

 

출처 : Easy의 고전음악방
글쓴이 : Eas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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