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mnopedies 1.2.3

에릭사티 / 짐노페디

Eric Satie,1866-1925, 프랑스


1번 느리고 비통하게 Lent et douloureux

뉴에이지의 시초가 어떤 누구 하나에 의해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명상적 특성, 간결미, 맑고 깨끗한 화성, 절제된 멜로디, 신비스러움 등의 모습이 바로 186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에릭사티(Eric Satie)의 음악에서 잘 나타납니다. 당시의 음악매니아 및 작곡가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음악으로 치부되었던 작품들이 지금의 뉴에이지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약 150여년 전에 말입니다.

뉴에이지 음악은 1990년대의 중/후반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론적 경향에 묘하게 일치된 점이 많았습니다. 사실 그 음악은 요한 파헬벳의 '카논'이나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등에서도 일찌기 그 조짐이 보였었지만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되지 못했다가 최근에서야 몇몇 아티스트들에 의해 확산되기 시작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대중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변화기 있었기 때문이죠.

Gymnopedies(1888)

"Gymnopedie".....복수 여성 명사. 그리스어의 '금노스:벌거숭이'와 '파이스 또는 파이도스:어린이'에서 유래된 말. 고대 그리스의 리케다이몬(스파르타)에서 행해진 나체의 어린이 또는 남성에 의한 아폴론이나 박카스를 찬미하는 춤을 말한다.

[라루스 백과사전]에 의하면 짐노페디는 아폴론을 찬양하는 축제하고 한다. 짐노페디는 지방의 작은 축제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큰 규모였으며, 핀다로스의 회고에도 올림피아, 퓨티아, 이스토미아, 네미아 등 여러 경기와 함께 그 명칭이 언급될 정도이다. 어쨌든 이 말에는 나체와 소년이란 개념이 포함되어 있다.

사티는 의식적으로 고대어를 찾아낼 만큼 청소년 교육에 있어 충기의 엄격함과 혹독한 훈련으로 잘 알려진 스파르타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사티의 작품 중 '짐노페디'와 '찌그러진 춤'만이 진정한 의미로 하나의 곡상에 의한 세 개의 변주곡이라 할 수 있다. 공통 부문은 장.단조의 리듬에 의한 반주에 실려서 조용히 흐르는 선율선이며 이것은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변화가 없다.

사티 작품의 거의 대부분은 세 개씩 묶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히 '3'이 많지만, '7'도 있다.

드뷔시는 짐노페디의 제1곡과 제3곡을 관현악 곡으로 순서를 바꾸어 편곡했다. 이 관현악 편곡은 '짐노페디' 본래의 성격을 왜곡했다 해서 비난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드뷔시는 친구 사티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었고 사티에게 도움이 되었다. 사티는 드뷔시의 관현악보를 사보하기까지 했는데 전혀 수정하지 않고 그 악보를 베꼈다 한다.

짐노페디를 연주할 때 곡이 일정한 속도 이상으로 느려지면 레가토나 가락이 끊어지게 된다. 꼭 필요한 레가토나 가락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속도를 발견해야 한다. 악보에 지시된 메트로놈 속도는 사티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고 참고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에 출판된 악보에는 이런 지시가 없었다.

작품의 구성

3개의 짐노페디는 초기의 사티를 대표하는 가곡군으로 유명하다. 그에 앞서〈3개의 사라방드〉가 샤브리에의 작품 등에도 이미 알려진 비해결 화음의 연속에 의한 어두운 음향을 가진 데에 비해서, 단음으로 연주되는 애조 띤 선율선과 그것을 지배하는 섬세하고 선법적인 불협화음만으로 구성되는 〈짐노페디〉는 획기적인 작풍과 개성을 나타내고 있다. 〈짐노페디 Gymnop die〉라는 말은 고대 그리이스에서 나체의 남자가 춤추던 의식 무도를 가리키는 'Gymnopaedic'에서 사티가 만든 말이다.

'3개의 짐노페디' 는 청정지대에서 길어 올린 맑은 샘물처럼 세속의 때가 묻지 않고 투명하다. 현란한 기교와 숭고하고 장엄한 분위기만을 음악의 미덕으로 삼던 시류에 반기를 든 그의 음악은 한마디로 솔직담백하다. 멜랑콜릭한 부분이나 밝고 쾌활한 악절이 모두 그렇다.

짐노페디는 고대 스파르타의 연중 행사의 하나인 제전으로 나체로 젊은이들이 합창과 군무로써 신을 찬양하는 것을 말한다. 샤티는 이 이색적인 소재를 프로벨의 소설 <사란보>의 일부에서 착상하여 1888년에 3곡의 조곡으로 작곡하였다. 그후 드뷔시가 이 조곡의 1번과 3번을 관현악으로 편곡하여 현재 연주되고 있는데, 드뷔시는 3번을 1번으로 하고 있다. 관현악 반주의 하프 연주도 감미롭지만, 역시 관현악 반주의 바이올린 연주도 무척이나 감미롭다. 여기서 바이올린은 약음기_울림을 작게 하는 장치를 끼고 연주하고 있다.

짐노페디 제1번 느리고 비통하게 Lent et douloureux(i=66) 3/4박자.

왼손이 낮은 G음, D음을 시이소식으로 반복하는 4마디로 도입한 후, 단순한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전30마디로 구성되는 악절이 함축적인 언어로 되풀이되는 모두 78마디의 소품이지만, 이들을 형성하는 짧은 프레이즈의 길이가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과 비기능적인 화성이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불안감을 자아내어 진부함을 피하고 있다.

1888년에 작곡된 이 곡은 플로베르의 소설 < 살랑보 > 의 일부에서 착상된 것입니다. 3개의 짐노페디 중, 반복되는 리듬이지만 이국적인 선율을 지니고 있습니다.


Violin 연주


하프 연주

짐노페디 제2번 느리고 슬픈 Lent et Triste


Piano 연주

짐노페디 제3번 느리고 무거운 Lent et Grave


Piano 연주

에릭 사티 (Eric Satie, 1866-1925, 프랑스)

사티는 기존 음악계가 쌓아놓은 신조나 미학을 무시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간 '세기말의 반항아'였다. 그는 낭만주의나 인상주의에 반대하여 감정의 표출을 절제한 채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음악들을 써냈다. 괴팍한 아이디어와 신랄한 유머, 그리고 신비주의와 순수에 대한 이념이 그의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만들어냈다. 파리음악원을 마친 후 1884년부터 피아노곡을 중심으로 작곡계에 뛰어든 그는 <오지브>(1886) <사라방드>(1887) <짐노페디>(1888) 등을 통해 단선 성가풍의 투명한 음악들을 선보였다.

1890년에 몽마르트로 이사간 그는 기괴한 옷을 입고 나이트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 시기부터 드뷔시와 친교를 가졌으며, 또한 신비주의적 비밀결사인 <장미십자교단>의 전속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장미십자교단의 종소리>와 같은 작품을 써냈다. 그는 <지휘자 예수의 예술 메트로폴리탄 교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유일한 교인이 된 적도 있다. 1898년 파리를 떠나 아르쾨유로 간 그는 조그만 방에 기거하면서 죽는 날까지 살았다.

항상 아마추어로 취급받는데 대해 불만을 느낀 사티는 1905년엔 스콜라 칸토룸에 입학하여 알베르트 루셀에게 다시 음악을 배웠으나 그의 음악은 과대망상증, 기벽증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1917년에 콕토의 대본과 피카소의 무대장치에 의한 발레 <파라드>의 음악을 맡으면서 그의 가치는 반전되었다. 시대를 초월한 대담한 수법과 혁신적인 사티의 사상은 미래파의 출현을 예고해주었고, 초현실주의의 선구적 역할을 했다.

Gymnopedie Style

그리이스의 옛 dance에 유래. Eric Satie가 많이 사용하였다. 연주할때 첫째 박자에는 bass음을 둘째박자 에는 sustained chord를 사용하여 melody를 치는 style.

사티 작품의 독창적인 지시어

사티는 그의 지시어들을 "이것은 연주자와 나 사이의 암호이다."라고 했다한다. 그는 때때로 비유적인 의미를 가지고 본질적 의미를 표현해 보기도 하고, 어떤 감각 영역에 있어서는 당연한 어휘를 다른 감각 영역으로 바꾸어 놓고 사용하기도 했다. 그들의 예는 다음과 같다.

Tres luisant ; 매우 광택나게

Questionnez ; 물음을 던지듯이

pas a pas ; 한걸음 한걸음

Postulez en vousmen ; 자기 자신에게 의뢰하는 느낌으로

Du bout de la pense ; 사고의 저편에서

Sur la langue ; 혀위에서

<자료출처: 참마음 참이웃 / 음원출처: 전남중등음악사랑연구회>

출처 : 향기로운 삶의쉼터
글쓴이 : hjkima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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